이번 포스팅에서는 자유 시장의 원리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설명한 애덤 스미스의 삶과 경제 철학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 생애(1723~1790)
애덤 스미스는 1723년 영국 항구도시 커칼디에서 세무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다. 14살에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여 윤리 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7살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에 들어가 신학, 법학, 철학, 그리고 윤리학을 공부한다.
그러다 옥스퍼드 대학 생활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1746년 자퇴하고 1748년 애든버러 대학교에서 공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강의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면서 1751년에는 글래스고 대학교 논리학 강좌의 교수가 되었고, 이듬해 도덕 철학 교수가 되었다. 1759년에는 '도덕 감정론'을 발표하게 된다.
1764년에는 교수를 그만두고 귀족 자녀의 가정교사가 되어 유럽 대륙을 여행한다. 특히 프랑스에서 많은 사람들과 토론하며 국부론에 대한 구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행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온 후 2년 뒤 1776년에 '국부론'을 발간한다.
스미스는 '국부론' 저자로서 업적을 인정받아 대학교수로 역임되었고, 글래스고 대학교의 학장이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죽기 전 완벽하지 않은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며 약 20권가량의 미발표된 원고를 불태워 달라고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스미스는 자기 눈앞에서 원고들이 불태워진 것을 보고 맘 편히 눈감았다고 한다.
2) 경제 철학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내버려두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복지를 증진시키고 국가 경제가 발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미스는 이 책에서 부의 본질이 노동에 있음을 간파했고 국가의 노동 생산성을 올리는 것이 부국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애덤 스미스는 핀 공장의 사례를 들어 분업과 특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핀의 개수는 하루에 20개 정도라 한다. 하지만 핀 제조 과정을 18개 공정으로 나누어 열 명이 분업을 하면, 하루에 48,000개 핀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기존에는 사람 10명이 200개의 핀을 만들었다면 분업과 특화를 통해서 48,000개 즉, 생산성이 240배나 증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특화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핀 공장 경영자는 공정마다 필요한 기계를 만들고 이를 잘 다루는 숙련공을 훈련시켜야 한다.
이렇게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이렇게 생산된 재화가 잘 팔릴 수 있는 시장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정부는 민간의 경제생활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렇다고 자유방임주의를 무조건 옹호하지도 않았다. 정부를 기본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으로 정부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애덤 스미스는 다음의 3가지를 정부의 필수적인 의무로 보았다.
1) 국가는 다른 나라의 폭력과 침략에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보유해야 한다.
2) 국가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다른 구성원의 불의나 억압에서 보호하기 위해 사법제도를 엄정하게 세워야 한다.
3) 국가는 사회 전체에는 큰 이익을 주지만 거기서 나오는 이윤이 비용을 보상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개인도 건설하고 유지할 수 없는 공공사업과 공공기구를 건설하고 유지해야 한다.
- 참고 자료 -
만화로 보는 맨큐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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